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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될 수 없는 역사, 발굴·투쟁·연대의 기록





1. 머리말 : 일본정부의 ’강제연행‘ 용어 삭제와 그 함의


일본정부는 2021년 각의결정으로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2021년 발행된 중·고등학교 필수과목 사회과 교과서, 2022년 검정을 통과한 중·고등학교용 사회과선택과목 교과서에서 ’강제연행‘을 삭제하고 ’동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했다.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강제로 연행되었다는 서술어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사회가 일본이 부정하는 식민지의 역사, 강제연행, 강제노동,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진실규명·투쟁, 그리고 평화를 향한 연대의 역사를 나타내는 용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연행’용어를 소거하려는 것은, 해방 후, 쌓아 올린 재일조선인, 일본 시민사회가 쌓아올린 역사화의 노력 그 노력까지 부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민화협에서 발간된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자료집󰡕은 일본의 부정에 대한 경고로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 자료집」의 내용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은 1972년 일본의 시민사회와 재일조선인이 결성하여, 오키나와, 홋카이도 지역의 피해를 조사했다. 1990년 이후 보다 조직적으로 조사활동을 펼치면서 1993년까지 일본의 16개 도부현의 총 20개의 조사단이 조직되었다. 각 지역의 조사단은 지역별로 활동하면서 정리하여 󰡔조선인강제연행조사의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이와같이 조사단은 개별적으로 활동하면서도 1년에 한번은 지역을 옮기면서 교류회를 열었다. 이 교류회를 위한 자료집이 본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전국교류집회 자료집"시리즈이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전국교류집회 자료집"시리즈는 자료집 1권부터 20권까지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총 20권의 활동자료집이다.

본 자료집들은 조선인 강제연행노동자의 피해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일본군‘위안부’의 문제(제5권, 12권) 식민지지배책임(제6권, 8권, 9권, 10권) 관동대지진의 문제(제15집), 재일조선인의 문제(제18집), 역사교과서 문제(제11권, 제17권) 그리고 유골문제 등 일본제국의 식민지지배의 폭력을 모두 담고 있다.

자료집 제1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전국교류집회 자료집"은 1992년 1월 20일에 있었던 전국교류집회 각지역 활동보고와 학술발표문, 모토오카 쇼지 의원의 강제연행에 대한 국회보고 내용 등이 실려있어 당시의 조사상황, 운동상황 등을 잘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제2권과 제3권은 각 지역의 1990년부터 1992년까지의 강제연행관련 활동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수집하여 편철해 놓은 것이다. 제4권과 제7권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초기 즉, 1970년대 활동에 대한 신문기사를 모아놓은 것으로 이들 4권, 7권, 2권 3권은 1970년대부터 1992년까지 발굴된 강제연행의 실태를 신문기사를 통해 정리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사료집이다.

일본군‘위안부’의 문제를 다룬 자료집으로는 1993년에 발간한 제5권과 제 12권이 있다. 제5권에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가장 처음 조사한 오키나와 조사에서 일본군‘위안부’와 위안소에 관해 조사한 내용이 실려있다. 또한 유엔에서의 위안부 강제연행문제의 개략은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중요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관련신문기사도 같이 편집되어 있어,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의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자료집이다. 마지막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종군위안부’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담화인 「과거의 큰 죄를 역사의 뒤안길에 영원이 묻으려고 하는 공모결탁을 규탄한다」를 싣고 있다. 제12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종군위안부 문제의 조사와 주장】1998.7.31.)는 보다 본격적으로 북한의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그 책임을 다룬 자료집으로는 자료집 6권(【조선 식민지 지배는 위법】1993.7.25.)과 8권(【 유엔결의와 식민지 지배, 강제연행】1995.5.), 9권(【1905년 한국보호조약에 관한 논문】1995.4.10.) 10권(【전후 50년 새로운 길을 위하여】1996.4.10.) 등이 있다.

교과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자료집으로 제11권(【추궁받는 전쟁책임】1997.3.10.)은 ‘검정 교과서 비판과 반복되는 망언’이라는 특집호이다. 제13권(【진상규명과 피해자의 존엄회복】1998.8.15.)은 1998년2월 28일부터 3월1일까지 이틀간 치바시에서 열린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제6회 전국교류(치바)집회에서 한 심포지움과 분과회에서 발표한 발표문을 정리한 것이다. 심포지움은 ‘강제연행이란 무엇인가, 미래를 향한 역사교육이란’제목으로 열렸다.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수가 강제연행 정책에 대하여 사료를 중심으로 강연했고, 요시다 유카타(吉田裕)는 전쟁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싣고 있다.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희생을 다룬 자료집은 제15권)【관동대진재 조선인학살 80주년-일본변호사연합회 권고와 조사보고】2003.11.30.으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80주년 기념 자료집으로 관동대진재의 인권침해에 대한 인권구제요구사건의 기록을 싣고 있다.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다룬 자료집은 제18권(【 재일조선인사(1905년조약 100년 -역사적 사실과 법적시점에서 검증한다】2005.11.12.)이다. 본 자료집은 재일조선인사 100년 특집으로 구성하고 있다. 강성은 교수의 1905년 을사오조약과 식민지지배책임을,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교수의 1905년조약의 강제성, 도츠카 에츠로(戸塚悦郎)변호사의 을사오조약의 불법성과 일본정부 책임을 논한 보고서가 수록되어 있다.

유골문제를 다룬자료집은 제16권, 17권, 19권, 20권이 있다.

2004년 한국의 노무현대통령 취임 후 바로 성립된 한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강제연행 희생자의 유골문제는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을 합의했다. 이후 유골조사, 봉환문제를 해결 논의를 위한 ‘한일 유골조사협의회를 설치하고, 군인군속 유골, 민간노무자 유골 봉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이런 정부 간의 움직임 아래, 한국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적극 협조하면서 정보교환 등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산된 보고서가 다음 일련의 자료집이다. 【자료집 16 전후 60년 희생자를 유족에게】는 한국에서 제정된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 특별법」과 위원회의 활동을 소개하고, 일본 내 각 지역의 조선인 유골의 실태 정보를 모아 놓은 자료집이다. 【자료집 17 지금 강제연행 희생자의 유골은】은 한국 뿐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유족이 있는 유골에 관한 조사보고가 실려있다. 그리고 후쿠오카지역 강제동원 피해자 중 희생자에 대한 명부가 실려있다.【자료집 19 지금 요구되는 진정한 대응】은 2005년 유골조사의 현황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골조사에 대한 정보교환 보고들을 집대성했다. 그리고 한일 국회관련 자료도 수집되어 실려있다. 각 지역에서 보도한 유골발굴, 봉환 기사들도 일자별 지역별로 조사 정리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집이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유골합의, 한국의 위원회와 일본의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연대와 협조 등으로 유골조사 및 봉환은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06년 북쪽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분위기가 냉각되었다. 일본정부는 북쪽 유족 입국을 거부했고, 더 이상의 진전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간한 것이 【자료집 20 유족의 고통을 안으며】이다. 조선인강제연행진산조사단은 공화국의 유족입국 거부 결정을 철회하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북측 유족의 입장문도 실었다. 미사일 발사와 과거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연계해서 유족 입국을 거부하는 일본의 행태는 ’반인도적‘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신문들에서도 일본정부의 조치에 비판적이었고,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일본의 유족입국 거부에 비판적이었다. 이때 일어난 다각적인 일들을 모아 놓은 자료집으로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편집해 놓았다.

3. 맺음말 :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 자료집」의 사료적 가치

일본 패전 후, 전쟁 상대국이었던 중국인에 대한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문제와는 달리 은폐되었던 조선인의 문제가 1972년부터 10여년간 활동한 조사단이 5개의 지역조사를 통해 밝혀졌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러한 활동이 재일조선인의 일본 내에서의 역사적 위치, 시민으로서의 권리, 인권 등에 대한 문제를 확인하게 되고, 그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 1970년대의 일본시민과 재일조선인의 연대운동은 1980년대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이 밑거름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1980년대는 조사단이라는 명목으로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 조사단에 합류하여 활동하던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진상조사와 저술활동을 지속해 왔다. 야마다 쇼지 교수 등은 강제연행 문제의 최고 전문가로 자리잡는 등 1980년대는 1970년대의 조사단의 활동에 깊이를 더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1990년에 다시 부활한 조사단은 소련붕괴에 따른 동북아시아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일본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간의 수교의 무드, 한국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 그리고 방일 등의 무드, 한국의 민주화 속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요구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의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은 한국의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일본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재일조선인 사회의 연대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조선인강제연행조사단 자료집"은 제1권부터 제20권까지의 자료는 그 연대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

각 권 제목 및 발간상황

제1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전국교류집회 자료집 1992.1

제2권 각지의 조사단의 할동-신문보도의 정리 1992.4

제3권 조사단전국연락협의회 중앙본부의 활동 -보도집 1992.4

제4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1970년대의 활동 복각판 1992.5

제5권 조선인‘위안부’강제연행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1992.12

제6권 조선식민지지배는 위법-1905년조약해설 1993.7

제7권 조사단전국연락협의회 중앙본부의 활동 1994.5

제8권 유엔과 식민지지배 강제연행-1905년 조약 1995.5

제9권 1905년 한국보호조약에 관한 논문 1995.5

제10권 전후 50년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1996.4

제11권 추궁받는 전쟁책임 1997.3

제12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종군위안부 문제의 조사와 주장 1998.7

제13권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존엄회복 1998.8

제14권 조선인강제연행, 강제노동 -일본변호사연합회의 권고와 조사보고 2002.12

제15권 관동대진재조선인학살 80주년-일본변호사연합회의 권고와 조사보고 2003.11

제16권 전후 60년 희생자를 유족에게 2005.1

제17권 지금 강제연행희생자의 유족은 2005.11

제18권 재일조선이사(1905년조약)100년-역사적사실과 법적시점에서 검증한다. 2005.11

제19권 지금 요구되는 진검한 대응 2006.1

제20권 유족이 고통을 안으면서 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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